일상을프레임에가두다

아카시꽃이 향기를 터뜨리는 5월에는
군대에서 행군하던때가 생각난다.
야간행군이었는데 칠흙같은 어둠속에 들리는 것은
군화발자국소리,군장에서 가끔씩 달그닥거리는 소리.

아무리 정신력으로 무장한다고하지만
사람인지라 이 생각 저생각하면서
지루함과 체력의 부침을 견뎌야했던 시간이었다.

산을 몇개 넘은것 같은데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조금씩 밝아오는 것을 보면서
조금만 더 버티면 되겠구나하는 위로를 하기도 했다.
내리막 코스를 조금은 편하게 내려오면서
벌써 벗겨진 뒷꿈치를 이리저리 안 아픈 쪽으로 
내딛으면서 어슴프레 보이는 논길을 따라 가고 있었다.

시골 어디에서나 맡을수있는 소똥냄새가
기분좋게 코를 자극하며 정신을 일깨울때
어느 부대 담장을 지나고 있었는데
소똥냄새에 이어서 아카시향이 새벽바람을타고
나의 온몸을 한차례 때리고 지나갔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강렬함.
아카시향이 이렇게 진할수가 있나?
주위의 모든 아카시향을 압축해서 내게로
보내준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한참 지난 지금도
잊지못할 정도로 극적이고 놀라운 것이었다.
그래서 해마다 아카시꽃이 필때는 그때를 추억하게된다.   

71년전 한국전쟁이 남기고 간 상처는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복구되기도하고 
기억들도 흐릿해지기도 했다.

그때 당시를 기억하고 얘기해줄수 있는 사람들도 
이제는 벌써 떠나거나 건강이 나빠져서 정확한 
시간의 흐름조차 얘기해줄수가 없다.

내가 태어난 이곳도
한국전쟁때 거의 모든것이 파괴된 건질것이 없었던 
절망의 땅이었다.

54년부터 조금씩 마을로 허락을 받고 
들어와서 70년대초가 돼서야 면 단위에 
마을이 형성된 것이니 맨몸으로 집을 짓고 
땅을 일궈서 하루하루를 살았을 님들의 피와땀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모든것이 망가진 폐허속에서 
하루하루 어떻게 견뎠을까?
자료나 사진을 보면서도 상상하기 힘들다.

초근목피(草根木皮)!!
모든 먹을수있는 것이면 풀이든, 나무껍질이든
먹으면서 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아카시꽃이 피는 계절에 
우리의 부모님들은 아카시꽃과 호박잎을 이용해서
이른바 '전쟁밥상'을 만들어 드셨다고 한다.

마을에서 DMZ관련 여행사 조합을 결성해 운영하고 있는데
코로나와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막혀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전쟁을 겪고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구술을 받고 영상을
기록하는 일도 여행사의 또 다른 일이기도해서 
몇분을 만나 기록을 했고,
시간이 날때마다 얼마 남지않은 어른들을 물색해서
일정을 잡고 있는데 

공통된 주제는 역시 먹고사는 문제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택해서 먹는게 아닌 
그야말로 죽지않을 정도로 겨우 유지하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얻는  것이라 영상에 담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얘기가 나온김에 아카시꽃도 마침 피고해서
그때의 '전쟁밥상'을 재연해 보기로 했다.

어릴때는 봉지에 아카시를 담아서
학교 미끄럼틀위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있는데
그것을 우리의 부모님들은 생명을 연장하는
끼니로 드셨던 것이다.

호박잎에 싸서 구우면 좋았을텐데 
구하기가 아직은 쉽지않아 큼직한'머위'잎을
사용하기로 했다.

어르신의 기억을 참고하고 설명을 들으면서
어설프게 만들어본 전쟁밥상.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손으로 해볼수 있는 것은 직접 해봄으로써
50년대 전쟁후의 어려웠던 삶의 모습을 간접체험하고자 한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신 님들의 넋을 기리고
다시는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모두
느슨해진 안보의식을 추스려야하겠다.

     

재료준비 

아카시꽃만 따로 모아놓습니다.

숯불에 구워야하기에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 봅니다.

어느정도 만들어진것 같은데 이제 불을 준비합니다. 

숯불을 준비합니다. 

익으면서 색이 변합니다. 구수한 냄새도 나네요.

살짝 여물냄새?가 납니다. 소죽 끓일때 많이 맡았던 추억의 냄새입니다.
살짝 소금을 쳐서 먹을만했습니다.

  남은 아카시꽃은 떡으로 만들어볼 생각으로 냉동보관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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