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당신.
고등학교 이후로 일반명사화 된듯한 이름이다. 감성이 풍부하던 학창시절에는 시를 암송하는 것도 어느정도 필수였는데
그 레파토리에 들어가있는 시이기도 했다.
집근처 어느집에 접시꽃이 외롭게 꽃을 피웠다.
한적한 곳을 지나다가 인기척이 느껴지지않는 시골의 누군가의 집에 담장을 따라 피어있던 모습이 기억났다.
외지인을 반기는듯 경계하는듯.
묘한 느낌이 드는 짧은 시간이었다.
꽃말 : 열렬한 사랑
접시꽃은 역사가 오래된 꽃으로 우리나라 전국에서 자란다. 봄이나 여름에 씨앗을 심으면 그해에는 잎만 무성하게 영양번식을 하고 이듬해 줄기를 키우면서 꽃을 핀다. 꽃의 색깔은 진분홍과 흰색 그리고 중간색으로 나타난다. 꽃잎은 홑꽃과 겹꽃이 있지만 홑꽃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6∼8월에 줄기 상반부의 잎겨드랑이마다 짧은 자루가 있는 꽃이 1~2송이씩 피기 시작하여 전체가 길이 1m 정도로 긴 총상 꽃차례를 이룬다. 지름 5~10cm인 접시 모양의 크고 납작한 오판화가 붉은색·흰색·노란색·자주색·분홍색·연황색·적자색·흑홍색·흑갈색 등 다양한 색깔을 뽐내며 아래서부터 위로 피어 올라가는데 꽃잎도 홑꽃과 겹꽃이 있다. 작은 꽃턱잎은 7~8개이며 밑 부분이 서로 붙어 있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진다. 5개인 꽃잎은 기왓장처럼 겹쳐져 나선형으로 붙어 있으며 꽃잎의 가장자리는 물결 모양이거나 둔한 톱니가 있다. 수술은 서로 합쳐져서 1개인 암술을 둘러싸고 암술머리는 여러 개로 갈라진다.
접시꽃 당신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랑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어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