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보면 나무위에 하얀 솜으로 치장을 한것처럼 보이기도한다.
근처로가면 바람을 타고 천연 향수같은 은은하고 좋은 꽃향기가 후각을 자극해서 기분을 좋게하는 것 같다.
어릴적 뻥튀기 장사 아저씨가 동네에 오면 집집마다 콩,옥수수,쌀 등을 가져가 튀겨서 겨울내내 온가족
간식으로 했던 튀밥이 생각나지만 식욕을 자극하는 구수한 냄새는 아니다.
이팝나무는 유래가 쌀밥과도 관련이 있는듯 하다.
처음에는 쌀밥과 비슷하여 이밥나무로 불리다가 후에 이팝나무로 불렸다고 하니 흰쌀밥이 귀해서 일반 백성들은
그림의 떡이었는데 그 간절함이 나무의 이름에 반영된듯 하다.
그런데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변해서 쌀밥이 오히려 성인병이나 비만의 원인으로 취급당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일단 나부터도 쌀밥보다는 잡곡위주로 그것도 히루에 한끼정도밖에 먹질 않으니 남아도는 쌀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농부들의 근심에 본의 아니게 일조를 하고 있는 셈이 되고 말았다.
'입하나무'라고도 불리는데,
꽃이 피는 시기가 24절기중에 하나인 입하때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외국인의 눈에는 멀리서보면 눈이 쌓인것처럼
보였나보다.
부르는 이름도 'snow flower'라고 했으니 말이다.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메이팝'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이팝나무를 형상화한것이라고 한다.
후손들과의 소통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냥 꽃으로만 볼것이 아니라
내용을 더 알게되니 공원에 하얗게 핀 이팝나무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것 같다.
Chionanthus retusus
Chinese Fringe Tree
육도목(六道木), 입하나무[立夏木]
높이가 20m에 달하며, 수피는 회갈색이고 가지가 사방으로 퍼진다. 잎은 마주 달리고 타원형·난형·난상타원형 또는 도란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지만 어릴 때는 복거치(複鋸齒)가 있다. 표면의 중륵과 뒷면 중륵의 밑부분에 털이 있다.
꽃은 5∼6월에 피고 백색이며 원추상 취산화서에 달린다. 화서는 새가지 끝에 달리고 길이 6∼10㎝이며, 소화경에 환절(環節)이 있다. 꽃받침과 화관은 네 개로 갈라지고 수술은 두 개가 화관통에 붙어 있다. 수꽃에 암술이 없다. 열매는 타원형이며 길이 1∼1.5㎝로서 검은 자주색으로 익는다.
천연기념물 제307호인 김해시 주촌면의 이팝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스런 나무로 여겨진다. 5월쯤 피는 흰색의 꽃은 전체의 나무를 흰 눈으로 덮은 듯하여, 영어로 ‘Snow flower’라고도 부른다. 속명 ‘카오난투스(chionanthus)’는 ‘흰 눈(雪)’을 뜻하는 그리스어 ‘키온(chion)’과 ‘꽃’을 뜻하는 ‘안토스(anthos)’의 합성어로, 흰 꽃이 만발함을 뜻한다. 종소명 ‘레투수스(rethosus)’는 ‘약간 오목하다’라는 뜻으로 잎을 강조한 것이다.
http://www.bo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2282
“옛날 경상도 어느 마을에 열여덟 살에 시집온 착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시부모님께 순종하며 쉴 틈 없이 집안일을 하고 살았지만, 시어머니는 끊임없이 트집을 잡고 구박하며 시집살이를 시켰다. 온 동네 사람들은 이 며느리를 칭송하는 한 편 동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큰 제사가 있어 며느리는 조상들께 드리는 쌀밥을 짓게 되었다. 항상 잡곡밥만 짓다가 모처럼 쌀밥을 지으려니 혹 밥을 잘못지어 시어머니께 꾸중을 들을 것이 겁난 며느리는 밤에 뜸이 잘 들었나 밥알 몇 개를 떠서 먹어보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순간 시어미가 부엌에 들어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제사에 쓸 멧밥을 며느리가 먼저 퍼 먹는다며 온갖 학대를 하셨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며느리는 그 길로 뒷산에 올라가 목을 매어 죽었고, 이듬해 이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서 나무가 자라더니 흰 꽃을 나무 가득 피워냈다.
이밥에 한이 맺힌 며느리가 죽어서 된 나무라 하여 동네사람들은 이 나무를 이팝나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인생에 있어 성공을 A라 한다면 그 법칙을 A=X+Y+Z로 나타낼 수 있다. X는 일, Y는 노는 것이다. 그러면 Z는 무엇인가. 그것은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 아인슈타인(독일 물리학자:1879~1955)
* 최상의 성공은 실망 다음에 온다. - H.비처(미국 목사:1813~1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