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프레임에가두다

가여울이 비룡대교 하류쪽 여울이라고 하면
신지강은 상류쪽에 있는 곳이다.

 

  


지금은 백사장이 예전만 못하지만 어릴때만해도
소풍 단골 장소였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곳이기도 했다.
임진강을 삶의 터전삼아 살아가는 어부의 배가 강가에 보이고
가을이면 건너편 주상절리에 빨갛게 물든 풍경이 아름다워
적벽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이곳 신지강은 고려시대부터 많은 얘기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우선 고려 태조가 이곳 경치가 아름다워 자주 찾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공민왕과 신돈의 비첩인 '반야'에 대한 슬픈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공민왕과 반야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후일 '우왕'이 되는 인물이다.
고려 왕실에서는 '우'를 반야 모르게 빼돌려 왕후의 아들로 삼게 하였는데
이를 알게된 반야가 대성통곡하며 항의하게 되고,
결국 반야는 옥에 갇히고 감시받는 신세가 되고 만다.

 

 

후일 이인임을 시켜서 이곳 신지강에 반야를 던져
죽였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려 태조가 아름다운 신지강 경치에 매료되어 배를 띄우게하고
여락을 즐기던 곳이었지만
한국전쟁과 몇번의 큰 물난리로 지형도 많이 변해서
옛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비룡대교 가까운곳 백사장 안쪽에는 한국전쟁당시 
연합군이 두껍게 얼어버린 빙판위에서 아이스하키 게임을 하는등
망중한을 즐기는 사진의 현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신지강적벽]
관측위치 : 백학면 학곡리 앞 임진강

* 공민왕 20(1371) 3에 왕이 장단에 나가 대장군 이화에게 명하여 공인을 시켜 강가 산언덕에 정자(降仙亭)을 건립케 하고 배를 타게 하여 상류를 오르내리며 즐겼다고 한다.

공민왕이 신돈의 비첩, 천하일색 미모가 아름답고 절색미인으로서 예절이 특이한 반야(般若)를 가까이 하여 모니노(牟尼奴)를 낳았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신돈의 아들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는 곧 우왕(隅王)이. 고려왕조에서는 우()를 빼앗아 왕후한비(王后韓妃)가 낳은 아이로 하려고 하니 반야는 밤에 몰래 태후궁(太后宮)으로 들어가 울부짖으며 내가 낳은 자식을 어찌 한씨를 어머니로 하시겠느냐며 항의를 하였다고 한다. 태후(太后)가 반야를 옥에 가두고 대간(臺諫)과 순위부(巡衛府)에서 감시하게 하였는데 반야는 새로 지은 중문을 가리키며 하늘이 만약 나의 원통한 것을 안다면 이문이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하였더니 잠시 후 과연 문이 무너지니 사람들은 이상히 여겼다 한다. 삼사우사 김속명(三司右使 金續命)이 탄식하며 천하에 그 아비를 분간 못하는 자는 있어도 어미를 분간 못하는 자는 듣지도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인임(李仁任)등이 반야를 신지강으로 데려가 강물에 던져 죽였다고 야사로 전해지고 있다.
- 연천군청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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